누구나 거쳐가야하는 구간이 우리들 삶에 존재합니다.우리는 우리가 탄생했던 순간을 모르고, 우리가 죽게 될 그 순간도 기억하진 못할 겁니다.다만 곁에 있는 누군가는 그 장면을 때때로 기억해 줄는지도 모르지만요.대신 나와 당신은 사춘기, 청춘 같은 것을 기억합니다. 그것도 강렬하게요.그것이 우리의 뒤를 가을 같은 우수로, 해수욕장 같은 여름 해의 광선의 기억으로 우리를 쫒아 오겠지요.제가 그렇고, 또 시인들이 그럴 겁니다. 여러분도 그럴 겁니다.그러나 그것을 건너던 날의 실제 모습은 그리 아름답거나 마음 시리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아무것도 모르고 누구도 몰래 그냥 잰걸음으로 지나쳤습니다. 드디어 느낄만하니 이제 사춘기도, 청춘도 아니었습니다. 아, 사춘기? 하고 생각할 무렵이면 벌써 사춘기는 아닐 겁니다. 청춘이지 우리? 물음과 동시에 청춘은 막차를 타고 떠나고 있습니다. 그저 뒤로 난 버스창의 비친 청춘의 뒷통수 정도 바라보면서요. 돌아봐주지 않는 그것이 야속하지요.저는 이 시집 <어느 누구의 모든 동생>을 도서관에서 먼저 발견했습니다. 단숨에 읽었습니다. 도서관은 조용해야 하는 곳이라서 속으로 꺼이꺼이 소리를 삼켰습니다. 가끔은 갇혀진 방처럼 답답했던 지난날의 감정이 기억났고, 또 가끔은 드넓은 백사장을 뛰는 듯 했지요. 여러분은 어땠습니까? 이 시집이요, 그리고 여러분의 푸른 그때가요.<스무살>이라는 짧은 시는 언제나 기억납니다. 아침 세수를 하다가도, 장바구니를 들다가도, 자전거 페달을 밟다가도 중얼중얼 말합니다. 시는 이렇습니다.세상에서 가장 빨리 끝나는 폭죽을 샀다. -<스무 살> 전문이렇게 짧습니다. 우리의 청춘의 길이만큼이나요. 폭죽을 다시 사고 싶습니다. 여러분은요?대신 저는 이 시집을 폭죽 대신 샀습니다. 청춘은 사지 못하고 시집은 그래도 살 수 있더군요. 마음에 드는 시집을 사지 않을 용기가 제겐 없습니다.막 스쳐 지나가는 청춘을 지켜보는 시인의 흔들리는 시선이 이 안에 담겨 있습니다.그리고 그것을 한 발 물러 바라보는 저의, 그러니까 이제는 한참이나 지나버린 제 청춘의 오버랩이 있습니다.청춘을 보는 시인의 시선이 하나, 시를 읽는 저의 시선이 또 하나. 이 아름답고 쓸쓸한 둘의 협주가 제가 붙들고 있는 이 시집을 한 번 더 태어나게 합니다.이제 보니 무척 푸른 봄날이었습니다.
어느 누군가의 동생이 다정하게 발설하는
모든 상처의 세계, 어떤 성장의 지연
시인 서윤후가 선보이는 내밀하고 다정한 온도의 첫 시집
2009년, 스무 살의 나이로 데뷔한 서윤후 시인이 등단 후 8년 만에 첫 시집 어느 누구의 모든 동생 을 출간했다. 시인이 시집의 주된 화자로 호출하는 ‘소년’은 가족 구성원 중 가장 깨끗한 백지상태에서 시작하여, ‘소년성’이 더렵혀지는 과정을 최후까지 남아 비교적 소상히 업데이트할 수 있는 ‘동생’으로서 위치한다. 동생은 아마도 1990년대생일 것이고, 그렇다면 이제 소년을 벗어나 청년이 되어야 할 시기일 것이다. 그러나 서윤후의 동생은 소년과 등치되어 성장을 지연시키고 서로의 성격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소년의 소심함과 동생의 다정함이 뒤섞여, 내밀하고 친밀하며 예민하고 예리한 시적 화자가 탄생했다. 엎드려 울고 있는 듯 몸을 숙인 동생 혹은 소년. ‘어느 누구의 모든 동생’이자 ‘서윤후의 소년’이 등장한 것이다.
1부
가정 13
희디흰 14
퀘백 16
나의 연못 18
희미해진 심장으로 22
곰팡이 첫사랑 24
거장 26
예컨대, 우리 사랑 30
취미기술 32
상속 34
코발트블루 35
계피의 질문 36
사탕과 해변의 맛 38
파리소년원 41
포기 42
오픈 북 44
종이의 생활 45
2부
에너지 49
다정한 공포 50
메종 드 앙팡 52
레오파드 소년들 54
소년성(小年性) 56
무명 시절 57
설탕의 신비 58
눈치의 공감각 60
말라리아 61
시리얼 키드 62
욕조 속의 아이들 63
구체적 소년 64
발육의 깊이 66
덴마크 다이어트 68
노력하는 소년 69
탈무드 버리기 70
사우르스 72
해변으로 독립하다 74
방물관(房物館) 75
요트의 기분 76
투명한 산책 78
3부
스무 살 83
하나 이상의 모뎀과 둘 이하의 잉꼬 84
어제오늘 유망주 86
외상(外傷) 88
스웨터 입기 89
독거 청년 90
감염된 나라에서 92
아프레게르 푸줏간 94
화염 96
무사히 98
편애 100
90년대의 수지 102
유니크 104
1995 105
1997 106
1999 107
커뮤니티 108
퀴즈 109
작품해설│장이지
달콤한 상처 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