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인문학’의 저자이기도 한 이지형은 내게 지난 2016년 6월 1일 발행된 Skeptic(월간)의 ‘음양오행과 사주’편에 실린 두 글 가운데 한 글의 필자로 기억된 분이다. ‘음양오행이라는 거대한 농담, 위험한 농담’이란 제목부터 흥미로운 이 글에서 필자는 음양론의 현실적 화신(化身)으로 추앙받는 주역(周易)은 무의미한 음양 막대기 6개씩의 조합과 유학자들의 사유가 자의적으로 결합된 무질서한 텍스트이며 적어도 태양 – 지구 – 달이라는 천문학적 시스템에 근거를 두고 구축된 음양론보다 훨씬 조악한 이론 체계에 해당한다는 말을 했다.(119 페이지) 또한 합리적인 근거를 찾기 어려운 전근대의 이론 체계를 인문학과 지식의 새로운 형식으로 격상시키려 시도하고 있다는 점을 부정적으로 본다고 말했다.(126 페이지) 지난 해 5월 ‘매혹과 혼돈의 메시지’라는 부제를 가지고 나온 ‘주역, 나를 흔들다’에서 저자는 주역을 우리가 주목하지 않던 세상으로 열린, 잊고 지내던 우리들의 내면을 들추어주는 64개의 창, 아주 멀리서 우리에게 불어오는 가을바람으로 정의했다. 책의 부제인 매혹과 혼돈에 대해 저자는 주역은 느릿느릿 이런저런 점사들을 던지다가 어느 한순간 예상치 못한 매혹의 메시지를 내던지지만 그 순간의 매혹은 닫히고 다시 어눌하고 모호한 말들이 펼쳐진다는 말로 설명했다. 미니 태블릿 PC 크기의 ‘라지’(가로 12.5cm, 세로 20.5cm) 크기를 가진 240여 페이지의 책에 64괘가 차례로 등장한다.(정상 크기는 가로 15cm, 세로 22.5cm이다.) 64괘의 시작은 건괘 위에 건괘가 자리한 중천건(重天乾)이고 마지막은 감괘 위에 리괘가 자리한 화수미제(火水未濟)이다.(건은 하늘, 곤은 땅, 감은 물, 리는 불, 손은 바람, 태는 연못, 간은 산, 진은 번개를 상징한다.) 왜 중천건인가? 그것은 건괘 위에 건괘가 (거듭: 重)왔기 때문이다. 왜 화수미제인가? 물을 상징하는 감괘 위에 불을 상징하는 리괘가 자리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첫 챕터의 제목을 ‘살다 보면 최소한 64개의 상황‘으로, 마지막 챕터의 제목을 ’걱정하지 않는다’로 설정했다. 저자는 ‘불리하지 않으면 유리하고, 유리하지 않으면 불리하고‘의 관점을 갖지 않기를 주문하며 주역이 신비하고 난해하다는 인상을 주는 것은 어느 쪽이든 삶의 상황이 최소 64개는 된다는 주역 설명이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는 편견도 한몫 한다고 말한다.(15 페이지) 곤괘 위에 곤괘가 자리한 중지곤괘를 보자. 가장 아래부터 1) 서리를 밟으면 곧 얼음이다, 2) 곧고 모나면서 크다, 배우지 않아도 불리할 것이 없다, 3) 빛을 품어 곧다, 큰일을 할 때 이름은 없어도 끝은 없다, 4) 주머니를 여미듯 하면 허물도 없고 명예도 없다, 5) 황색 치마를 입으면 길하다, 6) 용이 들에서 싸우는데 그 피가 검고 누렇다 등의 설명이 붙는다. 저자는 이를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점사(占辭)들을 곤이라는 괘 이름 아래 모아놓다 보니 이런 일이 생긴 것이라 말한다.(17 페이지) 일관성이라고는 없는 혼란스러운(자의적인, 연결성이 없는) 설명이다. 저자는 자신이 주역에 유일하게 높은 점수를 주는 부분은 그 연결성도 없는 자의적인 것들을 꾸리고 조합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사람들로부터 찾는다.(18 페이지) 저자는 여덟 개의 요소(8 X 8= 64)로 세상을 보는(파악하겠다는) 사고방식을 아름다운 착각이라 말한다. 저자는 그냥 닥치는대로 환경에 적응하다보니 지금의 내가 뒨 것이라며 일이 이루어지는 방식이 원래 그렇다는 말을 덧붙인다.(25 페이지) 저자는 위에 산이, 아래에 물이 자리한 산수몽괘의 설명 중 “한 번 점치면 알려준다. 두 번 세 번 물으면 모독이다. 알려주지 않는다.”는 구절을 설명하며 선택의 가치를 믿어야 한다는 메시지라고 강조한다. 차선이든 차차선이든 자신의 선책을 밀고 나가면 대부분 무언가 이뤄진다는 것이다. 저자에 의하면 주역은 점이나 치는 책을 넘어 계도하려 하고 송나라의 성리학자들은 음양과 주역 64괘에 우주의 원리를 통째 연계시키려 했다.(38 페이지) 주역 편찬자들의 갖다 붙이기는 상상을 절하는 수준이다.(40 페이지) 저자는 주역 이해의 관건은 질서 속에 감추어진 무질서를 간파하는 것이라 말한다. 질서는 강박이고 환상이라 말한다.(44 페이지) 저자는 사주의 현란한 기법, 주역의 파란만장한 괘와 효의 스펙트럼도 알고 보면 모두 구라이고 마음 약한 사람을 현혹하는 잡문들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요체는 지난 일을 보살피고 다가올 일을 살피는 것이 가장 정확한 천기누설이란 점이다.(64 페이지) 주역은 난세의 책이다. 주나라 문왕이 감옥 안에서 64괘를 만들었다. 문왕은 주나라를 창건하고 은나라의 폭정을 뒤엎기 전 은의 주왕에 의해 세상과 격리된 채 감옥에 살았었다.(66 페이지) 주역은 염려와 근심의 한복판에서 태어난 책이다.(67 페이지) 주역은 은, 주 교체기의 혁명적 상황을 담고 있고 점사에 그런 전운(戰雲)이 완연하다.(147 페이지) 주역은 난세의 책이기에 뒤집힘을 긍정적인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건이 아래에, 곤이 위에 있는 지천태를 혁명과 변화의 괘로 보는 것이다.(지천태는 소통의 괘로 읽히기도 한다.) 물론 평안을 지향한다. 주역의 괘들이 저마다 여섯 개의 효를 늘어놓으며 펼쳐대는 얘기들은 어느 한 방향으로 흐르는 법이 없다. 산화 비(山火 賁) 괘의 경우 주역의 드라마는 아름다움에 대한 경계에서 드러난다.(100 페이지; * 비賁; 클 분, 꾸밀 비) 저자는 주역은 본질적으로 음양의 조합이 아니라고 말한다. 주역은 근본적으로 점사들의 조합이라는 것이다.(102 페이지) 아무리 좋은(나쁜) 괘라도 여섯 번째 효에서
경학(經學)의 무게와 복서(卜筮)의 옷을 걷어낸이토록 쉬운 주역, 이토록 매력적인 주역 읽기‘주역’에 대해 우리는 보통 두 가지로 말한다. 사서삼경(四書三經)의 하나로 공자가 가죽끈이 세 번 끊어지도록 읽었다던 경전으로서의 주역과 인간사의 길흉화복을 점치는 복서로서의 주역이다. 고전에 약한 일반인이 읽기에 난해하기는 어느 쪽이든 마찬가지다. 중국 고대인의 암호 같은 64괘의 모양을 해석해야 한다거나, 음양이니 괘사니 효사니 점사니 하며 괘상을 풀이한다고 달아놓은 일관성 없는 내용의 한문들을 해석하고 이해하는 과정은 보통의 내공이 아니고서는 해내기 어렵다. 세상사의 변화를 담고 철학ㆍ윤리ㆍ정치상의 해석을 덧붙인 주역이 그동안 우리네 일상 속으로 들어오지 못한 이유다. 한마디로 주역은 주역 자체의 진입장벽이 너무 높아 전문적으로 공부하지 않고서는 읽기 어렵고 까다로운 책이라는 것이다.그러나 인생이라는 파고를 넘고 크고 작은 부침을 겪으며 삶에 어느 정도 문리(文理)가 트이고 나면 그도 그리 어려울 것이 없다. 주역이 담고 있는 역동적인 변화와 세상사의 은밀한 은유를 삶에서 몸소 체득한 이들은 주역의 64괘 중 어느 괘에 멈춰 담담히 위로를 받고 자신을 다독일 수도 있으며, 우연히 희망을 얻기도 할 것이며, 무릎을 치며 지혜를 얻을 수도 있다. 주역은 그렇게 삶의 정서와 이야기를 품은 문학적 성격도 띠고 있다.저자는 이 책 주역, 나를 흔들다 에서 그동안 주역이 보여온 현학적 모습을 걷어내고, 점서라는 미신적 오명을 벗겨낸다. 내공이 쌓인 자만이 비약을 통해 단순해질 수 있음을 보여주듯 저자는 64괘의 각 괘상을 순서대로 짚어가되 그중 고갱이만을 추려 해설한다. 과거에 만들어진 주역을 오늘의 삶으로 변환해 던지는 저자의 짧은 메시지는 덤이다.
프롤로그 | 붉기도 해라, 주역이 건넨 홍매화 한 송이
살다 보면 최소한 64개의 상황
하늘의 뜻을 묻다
01 중천 건 완벽·순수는 매력 없다
02 중지 곤 논리·사유보다는 낌새로 파악
03 수뢰 준 머뭇거릴 땐 빈둥빈둥
04 산수 몽 모든 시작은 미약하고 어리석으나
05 수천 수 내가 찾지 않으면, 그가 나를 찾아온다
06 천수 송 싸움의 절반은 지기 마련
07 지수 사 갈매나무처럼 굳고 정한 그를 기다리며
08 수지 비 어깨를 나란히 할 때, 그 아름다움
압박은 하더라도 퇴로는 내줘야지
09 풍천 소축 먹구름 감상법
숫자 9와 6에 담긴 뜻
10 천택 리 그러면 안 되겠지만, 호랑이 꼬리를 밟았다면
하늘과 땅을 뒤엎을 기세
11 지천 태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이후
12 천지 비 수치를 품고
13 천화 동인 혼자서도 할 수 있어 라고 말하지 않는다
14 화천 대유 태양신 아폴론의 괘
남는 건 역시 자연
15 지산 겸 이름을 떨친 후의 겸손
16 뇌지 예 시작하는 즐거움
17 택뢰 수 마키아벨리의 효사
18 산풍 고 재앙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19 지택 림 낮은 데로 임하는 다섯 가지 방법
20 풍지 관 바람, 세상을 관조하다 성찰하다
21 화뢰 서합 직설과 구체의 힘
22 산화 비 붉은 노을에 관한 단상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자, 아주 가끔만
23 산지 박 무너지기 마련이다
24 지뢰 복 그래도 남은 불꽃 하나
25 천뢰 무망 2천 년 전의 ‘렛 잇 비!’
26 산천 대축 큰 축적은 큰 몰락의 징후
27 산뢰 이 주역, 다이어트를 권하다
28 택풍 대과 연상연하에 관한 그들의 견해
4대 난괘
29 중수 감 솔라 피데sola fide
30 중화 리 눈부신 것들은 아름답지 않다
경계는 무의미할 때가 대부분
31 택산 함 19금(禁) 괘
32 뇌풍 항 회한이 사라진다
33 천산 둔 가끔은 숨는다
34 뇌천 대장 힘은 위험하다
35 화지 진 서서히, 묵직하게
36 지화 명이 어둠의 마음
잠깐, 용 소환
37 풍화 가인 말이 꼭 사물을 가리켜야 하는 것은 아니다
38 화택 규 몽테크리스토 백작의 괘
39 수산 건 파행의 끝에서 반전
40 뇌수 해 해결 말고 해소
41 산택 손 내가 잃고 그가 얻을 수 있다면…
42 풍뢰 익 이기(利己)에 대한 강력 경고
43 택천 쾌 은밀하게, 과감하게
44 천풍 구 여자가 드세다고 취하지 말라니…
45 택지 췌 정情은 사람들 사이로만 흐른다
46 지풍 승 한 걸음씩 가도 늦지 않는다
47 택수 곤 말을 해도 믿지 않는다
48 수풍 정 늘 한자리를 지키는 우물처럼
49 택화 혁 기다리는 동안, 상황도 나도 변한다
50 화풍 정 우주는 코스모스가 아니라, 카오스라서
51 중뢰 진 군자연(君子然)은 시대를 막론하고
시대에 뒤떨어진다
52 중산 간 그 자리서 멈춰라, 흔들리지 않는 저 산처럼
53 풍산 점 스며들다, 하나가 되다
54 뇌택 귀매 때로는 은둔
55 뇌화 풍 벼락처럼 왔다가 정전처럼 사라지는
56 화산 려 누구나 떠돈다
57 중풍 손 바람의 거처
58 중택 태 오랜 자폐와 둔감을 떨치고
59 풍수 환 강풍이 바다를 뒤흔들 듯이
60 수택 절 현명한 제약이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점(占), 너무 믿지 마라
61 풍택 중부 당신과 오래도록 술을 나누리라
62 뇌산 소과 스칠 뿐, 만나지 않는
63 수화 기제 돌이킬 수 없다
64 화수 미제 돌이킬 수 있다
걱정하지 않는다